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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숙주 인간
    책 추천, 리뷰 2020. 11. 15. 11:14

     

     

    캐슬린 매콜리프 / 이와우

     

    *제가 읽고 인상 깊었던 부분을 그대로 발췌했습니다.

     


     

    최근에 존스홉킨스대학교의 과학자들이 이전까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아주 특별한 형태의 기억력을 살펴본 결과, 카페인이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흥미로운 사실은 카페인이 아주 비슷한 물체들을 구분할 때 필요한 기억력을 향상시킨다는 점이었다. 이를테면 자동차의 종류, 망치의 종류, 또는 좀 역설적이지만 꽃의 종류 같은 기억이다.

    "생각해보면 참 웃겨요. 카페인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폭넓게 이용되는 약물인데, 벌들은 우리가 지구에 등장하기 수천 만 년 전부터 카페인을 섭취해왔죠."

    그녀가 발견한 내용에는 또 다른 즐거운 반전이 들어 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현화식물들 중에서 꿀 속에 카페인이 들어 있는 식물은 몇 안되지만, 이 소수집단의 식물들이 오늘날 가장 폭넓게 재배되는 작물에 해당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커피나무 외에 차, 카카오, 콜라나무 등이 그러하다. 라이트가 살짝 비꼬며 말하듯이, 우리는 카페인을 섭취할 때 찾아오는 느낌을 좋아한다. "이 현화식물이 우리를 조작해서 우리로 하여금 자기를 대량으로 키우게 만들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죠."

     


     

     

    예를 들어 그는 감염 남성과 감염 여성이 때로는 반대되는 특성을 보이는 결과를 보고 당황해 했다. "한 가지 가능성은 기생충이 일으키는 스트레스를 남성과 여성이 각각 다르게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에도 그런 이론이 있다고 한다. 여성은 불안하면 다른 사람을 찾아 위로를 구한다. 심리학에서 여성들은 서로 보살피고 친구가 돼주는 경향이 강한 반면 남성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혼자 있고 싶어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진통제나 마약이 우리의 행동에 변화를 일으킨다는 생각에는 별 거부감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평생 자기 뇌 속에 들어있을 수백, 수천 마리의 작은 단세포 기생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이 기생충들을 없앨 수도 없을뿐더러 그것이 거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면, 이 기생충이 미치는 영향력은 어디서부터 나의 본질로 자리 잡는 걸까요?

     


     

     

    법률가들과 법대생들이 집중적으로 던진 질문이 있었다. "어떤 사람을 보고 그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뇌 영역에 기생충이 들어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많은 경우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면서도 대체 왜 그런 행동을 하는 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기분장애를 어린 시절의 갈등과 관련시킬 때가 많죠. 하지만 누가 압니까? 우리의 무의식중에는 병원체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죠.

     


     

    하지만 이 마른 쥐가 먹기는 훨씬 더 많이 먹는다. 이 쥐가 체중이 덜 나가는 이유는 통통한 쥐와 달리 장 속에 미생물이 없기 때문이다. 분해를 도와줄 미생물이 없으면 음식은 대부분 소화되지 않은 채 위장을 통과해 버린다. 이 쥐는 뚱뚱한 쥐보다 먹이를 30% 더 섭취하는데도 지방이 60%나 적다.

     


     

    제왕절개를 통해 산부인과 의사가 무균 장갑을 끼고 받아낸 아기는 장내세균이 자리를 잡는 결정적인 시기에 엄마의 미생물군유전체를 접할 기회가 줄어든다. 그리고 분유를 먹고 자라는 신생아는 엄마의 모유에 들어 있는 수백 종의 미생물 균주를 그대로 놓쳐 버린다. 이 두 집단에 속하는 신생아들은 다른 아동들에 비해 뚱뚱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도 있는데 앞서 이야기한 실험 결과들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성이 없었을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런 경우를 무성생식 혹은 클로닝이라고 한다. 세균 같은 단세포 생명체가 선호하는 이 전략은 그냥 한 마리가 두 마리로 쪼개지면서 부모와 동일한 복사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클론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증식하기 때문에 숙주의 방어기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이로운 돌연변이를 빠른 속도로 축적할 수 있다. 우리 같은 다세포 숙주들은 번식 속도가 너무 느려서 새로운 돌연변이로 자신을 보호하기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그보다 나은 보호막이 필요하다.

    (...)

    이 이론의 지지자들은 부모에서 자손으로 유전자가 전달될 때마다 유전자들이 뒤섞인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성이 진화의 흐름을 뒤바꿔놓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었다고 믿는다. 사람의 경우에는 MHC를 구성하는 유전자의 수가 200개쯤 된다. 이것은 수십억 가지의 서로 다른 조합으로 유전될 수 있다.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유일무이한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성 덕분이다. 이는 당신과 당신의 이웃이 병원체에 대한 감수성이 각자 다 다르다는 의미다. 그래서 치명적인 병균이 마을을 덮치더라도 모든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 2014년 말에 공격성이 대단히 강한 바이러스인 에볼라가 아프리카 서부를 휩쓸었을 때도 감염된 사람 중 약 30%의 사람들이 살아남았다. 의학적 조치를 거의 혹은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그랬다. 이 운 좋은 사람중에는 바이러스 세포 내로 침입할 때 필요한 분자가 세포 표면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는 클론이 아니기에 등 뒤에 각자 서로 다른 표적을 붙이고 있는 셈이다. 이 표적이란 서로 다른 병원체들에게 도킹 스테이션으로 작용하는 세포 표면의 분자 배열을 말한다. 한 개체군 안에서 표적의 분포는 최근에 어떤 감염이 일어났었는지에 따라 극적으로 요동칠 수 있다. 병원체가 한 표적에 달라붙자마자 이 도킹 스테이션의 숫자는 감소하기 시작한다. 미생물이 이런 도킹 스테이션을 가진 사람을 대량 학살하는 데 성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숙주가 줄어들기 때문에 이 세균도 다른 표적을 조준할 수 있는 새로운 병원균으로 돌연변이하기 전에는 파괴적인 힘은 약해진다. 그러나 그 뒤로 이어지는 세대에서는 첫 번째 표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다시 늘어날 수 있다. 급속히 진화하고 있는 병원체가 이제는 다른 표적을 뒤쫓고 있기 때문이다. 밴 베일른과 해밀턴은 우리를 비롯한 유성생식 생명체들은 이런 방법을 통해 우리를 귀찮게 쫓아다니는 기생생물들보다 한발 더 앞서갈 수 있다고 추측했다. 기생생물과 우리는 이렇게 물고 물리며 서로를 뒤쫓는 것이다.

     

     


     

    흙은 수많은 산모가 믿고 사용하는 입덧 치료제다. 그 다음으로 큰 규모를 차지하는 흙 섭취 집단은 학령기 아동들이다. 아마도 성장기 동안의 급속한 세포분열로 인해 병원체와 독소에 좀 더 취약한 상태이기 때문일 것이다.

     


     

    신경증에서 얻는 중요한 혜택중 하나가 바로 질병 회피 효과였다면 이 특성의 비용편익 비율은 훨씬 호의적으로 돌변한다. 쉽게 풀어 설명하자면 오늘날 기분장애가 흔한 이유로 한가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잔걱정이 많았던 선조들이 기생생물을 피하는 데 능하여 생존에 유리했고 우리는 그 불안 많은 성격을 전달받게 됐다는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해를 입은 쪽이 어느 쪽인지 지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어떤 행동을 두고 잘못됐다 느끼기도 한다. 도덕 연구 분야의 또 다른 거장인 조너선 하이트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일단 즉석에서 판단을 먼저 내리고 나중에 그 느낌을 정당화한다고 한다. 요즘에는 이런 직관이 역겨움에 영향을 받아 생긴다는 쪽으로 결론이 모아지고 있다.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사람으로 하여금 썩은 악취에 구역질을 느끼고, 상한 우유를 마시고 토하게 만드는 바로 그 감정이 어쩐 일인지 윤리에서 종교적 가치, 정치적 관점에 이르기까지 우리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신념 속에도 뒤엉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앞쪽 뇌섬엽은 구토반사를 지배하는 오래된 뇌 영역이다. 하지만 실험참가자들이 누군가 다른 사람을 잔혹하게, 혹은 불공평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분노할 때 혐오감에 흥분하는 부분도 바로 이 뇌 영역이다. 그렇다고 해서 본능적 역겨움과 도덕적 역겨움이 뇌에서 완벽하게 중첩돼 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같은 회로를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 뇌 영역에서 불러일으키는 느낌이 가끔은 판단을 왜곡시킬 수 있다.

     

     


     

    만약 당신이 탐욕스럽거나, 내게 부정행위를 하거나, 내 물건을 훔치면 나는 화가 나서 당신을 때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당신도 맞받아칠 수 있어요. 그리고 당신이 덩치 좋고 힘센 오빠를 데려와서 나를 함께 때릴지도 모르죠. 폭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에요.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당신을 외면해 버리는 것이 훨씬 나을 겁니다. '저 여자는 정말 역겨운 여자야. 마치 사회의 기생충처럼 행동해. 케이크를 자기 몫보다 더 많이 가져간다고.' 이런 경우에는 역겨움에서 나온 정신적 장치를 이용해서 벌하고 있는 것이죠. 폭력이 아니라 외면을 통해 벌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별다른 노력이 들어가지 않죠. 당신이 내게 보복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 오빠한테 가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그 여자애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정말 역겨운 애야.' 그럼 오빠도 이렇게 말하겠죠. '그래? 정말 역겨운 애로군.' 안좋은 평판은 대개 이런 식으로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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