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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책 추천, 리뷰 2021. 1. 24. 20:43

     

     

     

     

    카를로 로벨리 /쌤앤파커스

    *제가 읽고 인상 깊었던 부분을 그대로 발췌했습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에너지와 질량이 동일한 존재자의 두 면이라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자기장과 전기장이 동일한 전자기장의 두 면이고, 시간과 공간이 하나의 시공의 두 면인 것처럼 말이죠. 이는 질량이 그 자체로 보존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에너지도 독립적으로 보존되지 않고요. 에너지와 질량은 서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오직 하나의 단일한 보존법칙만이 존재하는 것이죠. 둘이 아니고요. 보존되는 것은 질량과 에너지의 총합이지, 각각 따로따로가 아닙니다. 달리 말해 에너지를 질량으로 질량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도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시계 하나를 바닥에 두고 다른 하나는 책상 위에 둡시다. 우리는 바닥에 놓아둔 시계의 시간이 덜 흐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일까요? 왜냐하면 시간은 보편적이고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질량에 따라 늘고 줄고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질량이 있는 모든 물체처럼 지구도 시공을 비틀어 그 주위에서 시간이 느려지게 만듭니다. 쌍둥이 중 한 아이가 바닷가에서 살고 다른 한 아이는 산에서 살다가 나중에 다시 만나면, 한 쪽이 다른 쪽보다 더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과학과 예술은 세계에 관해 새로운 무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세계를 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하며, 세계의 두터움과 깊음과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위대한 물리학과 위대한 음악은 마음에 직접 말을 하고 사물의 본성이 지닌 아름다움과 깊이와 단순성으로 우리의 눈을 엽니다.


     

    시공은 장이다. 세계는 장과 입자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공간과 시간은 또 다른 장일 뿐 그것들과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양자역학이 기술하는 세계에서는 물리계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가 아니고는 그 어떤 실재도 없습니다. 사물이 있어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가 '사물'의 개념을 낳는 것입니다. 양자역학의 세계는 대상들의 세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기본적 사건들의 세계이며, 사물들은 이 기본적인 '사건들'의 발생 위에 구축되는 것입니다. 1950년대에 철학자 넬슨 굿맨이 아름답게 표현했듯이, "대상은 한결같은 과정", 잠시만 자신을 똑같이 되풀이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마치 파도가 바닷속으로 녹아 들어가기 전에 잠시 모습을 유지하듯이, 돌은 잠시 구조를 유지하는 양자들의 진동입니다.

    파도는 물 위를 움직여 가지만 한 방울의 물도 나르지 않습니다. 이 파도란 무엇일까요? 파도는, 지속적인 물질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의미에서,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 몸의 원자들도 우리에게서 흘러나갑니다. 우리는 파도처럼 그리고 모든 대상들처럼 사건들의 흐름입니다. 우리는 과정입니다. 잠깐 동안만 한결같은....


    입자성: 계의 상태 정보는 유한하며, 플랑크 상수에 의해 제한된다.

    비결정성: 미래는 과거에 의해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가 보기에 더 엄격한 규칙성조차도 실제로는 통계적이다.

    관계성: 자연의 사건들은 언제나 상호작용이다. 한 체계의 모든 사건들은 다른 체계와 관계하여 일어난다.


    공간의 양자는 그 자체가 '공간'이기 때문에 그것이 있을 장소가 없습니다. 이 공간의 양자들은 그것들을 공간적으로 특징짓는 오직 하나의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공간의 양자들과 인접해 있는지, 어느 것이 어느 것 옆에 있는지에 대한 정보입니다. 이 정보는 그래프의 링크들로 표현됩니다. 링크로 연결된 두 노드는 인접한 두 공간의 양자입니다. 서로 접촉하는 공간의 두 알갱이인 것이죠. 바로 이 '접촉'이 공간의 구조를 만듭니다.


    중요한 것은 알려는 욕망을 포기하는 것에 대한 반항입니다. 이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의 표명이며, 무지에 만족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무한이라 부르면서 앎을 다른 곳에 위임해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당당한 회답입니다.


    찬 커피와 따뜻한 공기에 담긴 정보가 뜨거운 커피와 찬 공기에 담긴 정보보다 적다. 그리고 정보는 저절로 증가하지 않기 때문에 커피가 저절로 뜨거워질 수 없다.


    어떤 물리계는 오직 언제나 다른 물리계와 상호작용함으로써만 나타난다. 따라서 어떤 물리계의 기술은 언제나 그것이 상호작용하는 다른 물리계에 관계해서 주어진다. 그러므로 어떤 물리계의 상태에 관한 그 어떤 기술도 그 물리계가 다른 물리계에 대해 갖는 정보의 기술, 즉 물리계들 사이의 상관관계의 기술이다.


    궁극적으로 과거를 미래로부터 구분 짓는 그것은 언제나 열입니다.


    데모크리토스는 '사람'을 이상하게 정의합니다. "사람이란 우리 모두가 아는 것이다." 이는 아무 내용이 없는 어리석은 말처럼 보여 비판을 받아왔습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본질은 신체의 물리적 구조가 아니라 그가 속한 개인적, 가족적, 사회적 상호작용의 연결망에 의해서 주어집니다. 바로 이것들이 우리를 '만들고' 우리를 지킵니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우리에 관한 다른 이들의 앎, 우리 자신에 관한 우리의 앎, 우리에 관한 다른 이들의 앎에 관한 우리의 앎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적 정보의 풍부한 연결망 속의 복합적인 매듭입니다. 모든 것은 아직은 이론입니다. 우리의 내적 세계를 더 잘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행로죠.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품고 있어야만 우리는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고 더 많이 배울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더 많이 배우기 위해서는, 가장 뿌리 깊은 믿음까지 포함하여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틀릴지도, 너무 순진한 것일지도, 조금 어리석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용기를 가져야만 합니다.

    과학은 이러한 겸손의 실행으로부터 태어납니다. 자신의 직관을 맹목적으로 믿지 말라. 모든 사람이 말하는 것을 믿지 말라. 선조들이 축적해온 지식을 믿지 말라. 만일 우리가 본질적인 것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본질적인 것은 책에 이미 쓰여 있고 어르신들의 가르침 속에 이미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합니다.


    과학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확실한 대답을 주기 때문이 아닙니다. 과학을 신뢰할 수 있는 까닭은, 현재 우리가 가진 최선의 대답을 주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찾아낸 최선의 대답 말입니다. 과학은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관해 우리가 아는 최선의 것을 반영합니다. 과학이 배움에 열려 있고 기존의 지식에 의문을 던진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과학이 제시하는 답이 우리가 손에 넣을 수 있는 최선의 것임이 보장됩니다. 더 나은 답이 발견되면, 그 새로운 답이 과학이 되는 것이죠.


    더 멀리 보려고 더 멀리 가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은 삶을 의미있게 만드는 놀라운 것들 가운데 하나인 것 같습니다. 사랑을 하는 것처럼, 하늘을 바라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배우고 발견하고 싶은 호기심, 언덕 너머를 보고 싶은 바람, 사과를 맛보고 싶은 바람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단테의 율리시스가 동료들에게 말하는 구절에서처럼, 우리는 "짐승처럼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탁월성과 앎을 추구하기 위해 살도록"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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