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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켑틱 13호 (2018.03)
    모임 기록 2020. 1. 16. 18:10

     

    대전 첫 모임

     

    발췌


    커버스토리 - 무엇이 과학적 사고를 가로막는가

    사람들은 왜 미신에 빠져드는가

     

    이중과정이론
    의사결정과정에서 판단이 직관과 추론의 이중과정을 통하여 도출된다는 심리학 이론. 여기서 직관은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이며 내재적으로 작동하는 과정인 반면 추론은 의식적이며 명시적으로 작동하는 과정이다. 예컨대 직관과 추론은 카메라의 '자동모드와 수동모드'에 비유할 수 있다. 즉, 직관은 뇌에 기본적으로 배선된 모듈을 사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일상적인 문제 처리에서 높은 효율성을 보이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며 편향성이나 오류를 드러낼 수 있다. 반면 추론은 상황에 맞춰 그때그때 가장 적절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일상적인 문제 처리에서 직관만큼 빠르게 작동하지는 않지만 의사소통이나 교육에 의해 바뀔 수 있으므로 새로운 환경에서는 더 융통성 있게 작동할 수 있다. 




    똑똑한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인지 재앙

    철학자 프랜시스 브래들리는 "형이상학은 우리가 이미 본능에 따라 믿고 있는 것을 확증하기 위해 그릇된 이유를 찾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이는 형이상학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사고 패턴 중 대다수가 이 같은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을 것이다.




    진화의 현장을 목격하다

    개는 어떻게 똑똑해졌을까?

    그때 저는 과학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그가 "내가 틀렸음을 자네가 증명하도록 도와주겠네."라고 말했으니까요.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그는 자신이 개의 인지능력에 관해 틀렸음을 깨닫자 흥분하며 실험을 더 해보자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으레 과학을 하얀 가운을 입은 천재들의 전유물로 생각하지만, 사실 과학은 기존 개념들을 반박하는 방법입니다.




    동물 연구와 정치학

    단죄할 것이냐, 교화할 것이냐

    더욱이 스티븐 핑커는 유아기에 나타나는 도덕성의 징후를 지적하면서, 아직 '도덕성 유전자'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여러 증거가 도덕감각을 위한 유전적 토대가 존재함을 암시하고 있으며, "이는 정상적인 인간의 뇌 설계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지 모른다."라고 강조한다.




    생명의 화학

    물리학의 관점으로 본 생명

     


    진화를 하려고 해도 일단 자기를 유지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자기 보존의 목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것이 복제다. 복제의 과정에서 생기는 오류와 자연선택은 필연적으로 진화라는 다음 단계의 결과물을 낳는다. 따라서 나는 진화보다 보존, 유전자보다 에너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동차의 에너지효율은 25~30% 정도지만 세포호흡은 40% 정도 된다.



    한때 이 에너지를 신비한 생명의 기운 같은 것으로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호흡으로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은 연쇄 화학반응에 불과하다.우리는 화학반응이 이렇게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살아 있다고 말한다. 살아 있음에 사용되는 원자들은 죽어 있는 물체들을 이루는 원자들과 동일하다.
    생명은 원자로 만들어진 화학기계다.




    행복을 권하는 사회의 역설

    행복 추구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자녀는 극도의 부정적인 정서를 안겨주거나, 약간의 부정적인 정서를 안겨주거나, 아니면 정서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한다. 자녀가 순전히 긍정적인 영향만 준다는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가 연구실에서 거듭 확인한 사실은 사람들은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할지 또는 불행하게 할지 예측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되고자하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 설사 그것을 안다 해도 외부 환경이나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이 우리가 신중히 세운 계획을 망쳐버리곤 한다.



    그러나 이 견해에도 역시 실망스러운 함의가 담겨 있다. 직설적으로 말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게 기만을 일삼아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우울한 사람들은 현실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고 행복한 사람들은 착각 속에서 뭉그적댈 공산이 크다는 연구가 있다. 이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무신론자들에 비해 행복한 이유를 설명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교인들은 현실의 삶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종교라는 안식처 속에서는 '나름의 섭리를 지닌' 자비로운 하느님으로부터 궁극적인 보상을 받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떄문이다. 그것이 바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의지하는 '이야기'다.
    추측하건데 <스켑틱>의 독자들이라면 그런 스토리텔링을 기꺼이 받아들이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휴 맥케이가 '행복과 그 이유들'에서 청중들에게 한 말은 어떨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합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낫지요. 그러나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더욱 칭찬할 만합니다."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카뮈는 50년 전에 이미 정답에 가까운 답을 찾은 듯하다. "당신은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의 구성요소가 무엇인지 자꾸 파헤치려 하는 한. 당신은 절대 살아갈 수 없다, 삶의 의미를 자꾸 찾으려 하는 한." 그는 그저 사는 대로 살라고 충고했다. 만약 당신에게 찾아올 행복이 있다면 그것은 결국 당신을 찾아올 것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행복을 강박적으로 찾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을 더욱 단순히 표현한 비틀즈의 노래도 있다. "렛 잇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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