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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의 미래
    책 추천, 리뷰 2020. 1. 15. 13:05

    미치오 카쿠 / 김영사

    *제가 읽고 인상 깊었던 부분을 그대로 발췌했습니다.


    한 개인의 마음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마음의 집합체에 가깝다. 마음에는 다양한 하부구조가 존재하며, 각 구조는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의식이란 뇌 안에서 휘몰아치는 폭풍과 비슷하다.

    사람들은 '나' 라는 존재가 두뇌의 통제실에 앉아 모든 장면을 스캔하면서 근육의 움직임을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모든 느낌은 환상에 불과하다. 인간의 의식은 뇌 전체에 퍼져 있는 수많은 사건의 소용돌이이며, 이 사건들은 CEO의 관심을 끌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나의 사건이 자신의 존재를 가장 큰 소리로 외치면, 두뇌는 거기에 합리적인 해석을 내림과 동시에 '하나의 자아가 모든 결정을 내린다'는 느낌을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두뇌가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려면 에너지를 최대한 절약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지름길'을 택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의 뇌는 긴 진화과정을 겪으면서 '절차를 무시하고 빠른 결정을 내리는 장치'를 다양하게 개발해왔다.


    간단히 말해, 우리 머릿속에서는 두 개의 의지가 육체를 지배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있다. 그래서 가끔씩 왼손이 자신의 욕구와 상반되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몇 가지 신기한 사례를 들어보자. 뇌량이 절단된 어떤 환자는 왼손으로 자신의 아내를 끌어안으면서 오른손으로는 아내의 얼굴을 내리 쳤다. 아내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감정이 별개로 작용한 것이다. 또 어떤 여성은 한 손으로 옷을 고를 때마다 다른 손은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옷을 집어들어서 패션을 결정할 수 없었으며, 한 남성환자는 자신의 오른손이 자기 목을 조를 까봐 무서워서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한다.


    어느 날 그는 한 환자의 좌뇌에 "학교를 졸업하면 무슨 일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환자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제도사가 되겠다고 대답했는데, 똑같은 질문을 우뇌에 물었더니 메모지에 "자동차 레이서"라고 적었다. 바로 옆에 있는 좌뇌도 모르는 사이에, 우뇌는 완전히 다른 욕구를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우뇌는 자기만의 감정을 가진 것이 분명하다.


    우리 머릿속에는 고유한 인격과 욕망 그리고 자아인식이 있는 또 하나의 인격체가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인격체는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인격체와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


    미래를 시뮬레이션한 결과, 바람직하고 유쾌한 결과가 예상되면 신경핵과 시상하부에 있는 쾌락중추가 활성화되고, 반대로 실망스러운 결과가 예상되면 안와전두피질에서 위험신호를 방출한다. 그래서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가 모두 예상되면 두뇌의 제각기 다른 부위에서 상반된 신호를 방출하여 총체적인 혼란에 빠진다. 그러나 배외측 전전두피질이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여 결국은 하나의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일부 신경과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이 갈등은 프로이트의 에고와 이드 그리고 슈퍼에고 사이의 역학관계와 비슷하다.)


    인간은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고 모든 것을 하나의 일관된 스토리로 엮으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 모든 것을 좌뇌가 관장한다. 아무런 규칙이 없는 풍경에서 어떻게든 패턴을 찾아내려 애쓰고 다양한 가설을 내세우는 것도 이와 같은 성향 때문일 것이다.

    하나로 통일된 '나'라는 느낌은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의식 속에서는 서로 경쟁하면서 종종 모순까지 일으키는 여러 경향이 혼재되어 있지만, 좌뇌는 모든 불일치를 무시하고 논리의 틈새를 어떻게든 매워서 '나'라는 하나의 느낌을 만들어낸다. 다시 말해서 좌뇌는 이 세상의 타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때로는 경솔하고 불합리한 변명을 끊임없이 늘어놓는 것이다. 심지어 답이 존재하지 않는 때조차 좌뇌는 "왜?"라는 질문을 퍼부으며 변명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모든 의사는 끔찍한 육체적 고통을 겪는 환자에게 진통제를 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통을 경감하면 감정까지 무뎌진다'는 이유로 진통제 처방을 중지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진통제 사용을 반대한 사례는 단 한번도 없지 않았는가? 정신의학이라고 해서 다를 게 무엇인가? 반대론자들이 펼치는 논리 저변에는 정신적 장애가 육체적 장애와 다르다는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


    좌뇌는 수렴적 사고를 담당하고 우뇌는 발산적 사고를 담당한다. 그래서 좌뇌는 세부사항을 점검하고 상황을 논리적으로 분석하지만, 추상적 연결고리를 찾거나 일의 우선순위를 매기는 데 서툴다. 반면에 우뇌는 상상력과 직관이 뛰어나고, 흩어진 정보를 모아 전체적 상황을 판단한다.


    새로운 뇌과학 기술은 계층 간의 격차도 줄여줄 것이다. 요즘 일류 사립학교에서 개인교습을 많이 받은 학생들은 나중에 사회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난이도가 높은 일에 남들보다 훈련이 잘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지능이 일괄적으로 높아지면 기회불균등에 의한 격차는 사라질 것이다. 모두가 똑똑한 세상에서 삶의 성취도를 좌우하는 것은 타고난 환경이 아니라 임기응변과 열정, 그리고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의지와 야망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지능이 높아지면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도 빨라진다. 지능이 높다는 것은 미래를 시뮬레이션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고, 이것은 새로운 과학적 사실을 발견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자질이다. 과거에도 과학자들이 새로운 연구방향을 떠올리지 못할 때, 과학은 종종 침체기를 겪었다. 미래를 시뮬레이션 하는 능력이 향상되면 과학자들은 다양한 가능성을 떠올릴 것이고, 과학은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발전할 것이다.


    두뇌는 디지털 컴퓨터가 아니라 스스로 학습이 가능한 신경망이다. 과학자들은 두뇌의 신경망을 연구하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깨어 있을 때 너무 많은 정보가 유입되어 포화상태가 되면, 뇌는 무리하게 가동하지 않고 수면상태에 들어간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 기억의 파편들이 떠돌다가 무작위로 결합하면서 새로운 기억이 생성된다. 다시 말해서, 신경망은 과도한 정보를 소화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꿈이란 두뇌가 기억을 체계적으로 저장하기 위해 실행하는 일종의 '청소작업'일지도 모른다.

    신경의학 연구논문들은 위의 주장이 사실임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피험자에게 충분한 수면을 취하게 한 후 기억력을 테스트해보면, 수면이 부족할 때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얻는다. 실제로 신경망을 촬영해보면 수면을 취할 때 활동하는 뇌 부위는 무언가를 새로 배울 때 활성화되는 부위와 일치한다. 아마도 꿈은 여분의 정보를 처리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인 듯하다.


    역사에 등장하는 예언자와 순교자, 그리고 한 종족을 이끌었던 지도자 중 일부는 측두엽 간질을 앓았을 가능성이 높다. 잔 다르크가 불과 16세의 어린 나이에 백년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천사장 미가엘과 알렉산드리아의 성 캐서린, 그리고 성 마가렛과 성 가브리엘 등 여러 천사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믿음이 너무도 확고하여, 프랑스 군인들도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로봇에게는 '상식'이라는 것이 없다. 로봇은 물리적 세계와 생물학적 세계에서 지극히 당연한 사실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날씨가 눅눅하면 불쾌하다"거나, "어머니는 딸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지만, 이 사실을 증명할 만한 방적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과학자들은 이런 종류의 정보를 수학적 논리로 변환하는 연구를 계속해왔고, 최근들어 약간의 진전이 었었다. 그러나 4살짜리 아이도 알 만한 상식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구현하려면 그 내용이 거의 수천만 줄에 달한다. 2백여 년 전에 살다 간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는 이런 사태를 예견이나 한 듯 "상식은 별로 상식적이지 않다"고 했다.


    로봇에게 감정을 부여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감정은 종종 비논리적인데 반해, 로봇은 논리의 최상급인 수학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리콘으로 구현된 의식은 인간의 의식과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아주 빠르게 진행되고, 전전두피질이 아닌 대뇌 변연계에서 생성되기 때문에 제어하기가 어려우며, 흔히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실험결과에 의하면 우리는 잘생긴 사람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

    인간의 의식은 오랜 진화 기간 동안 비정상적인 요인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로봇에게는 이 부분이 빠져 있고 앞으로도 구현하기 어려우므로, 실리콘의식은 사람처럼 허술하거나 변덕스럽지 않을 것이다.


    의식이 존재하는 모든 순간은 말할 수 없이 값지면서 깨지기 쉬운 선물과 같다. 이 사실을 안다면 삶의 목적을 놓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 커다란 목적이 될 수 있기 떄문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의 뇌는 양자역학적 기계장치이고,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의하면 어떤 기계도 풀 수 없는 문제가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은 이 수수께끼를 직관으로 해결할 수 있다.

    역설계 두뇌가 제아무리 복잡하다 해도 결국은 트랜지스터와 전선의 집합체이므로 결정론을 따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기계의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양자적 체계는 불확정성원리의 지배를 받고 있으므로, 본질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여러 가지 가능한 미래 중 어느 하나가 나타날 확률을 계산하는 것뿐이다.


    자유의지는 존재하는가?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자유의지는 완고한 개인주의자들이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과 의미가 다르다. 우리는 모든 선택을 자신의 뜻대로 한다고 생각하지만, 뇌는 이미 결정된 수천 가지 요인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언제든지 재생할 수 있는 영화속 배우라는 뜻은 아니다. 영화의 결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양자적 효과와 혼돈의 미묘한 조합이 결정론적 요소를 붕괴시킨다. 결국 우리는 언제까지나 운명의 주인으로 남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x3ibQ8Bfux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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